국물을 다 비우고 나서도 숟가락을 내려놓지 못했다. 그릇 속엔 더 이상 남은 게 없었지만, 속이 가만히 안정을 찾는 시간이 필요했다.
치앙마이의 해장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한 그릇으로 배는 채워졌지만, 마음은 아직 어디론가 천천히 흘러야 했다.
🚶 골목이라는 작은 도피
쌀국수집 문을 나섰을 때 바람이 바뀌어 있었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적당히 게으른 공기가 팔과 목덜미를 감쌌다.
이름 없는 골목으로 들어섰다. 담벼락 위로 올라간 나무들, 가끔 마주치는 고양이, 그리고 조용히 말라가는 빨래 한 줄.
발걸음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길. 지도도, 목적도 없이 걸을 수 있다는 자유만이 이 도시의 골목을 완성시켰다.
🪑 멈춤이 허락된 벤치
모퉁이 작은 카페 앞, 누군가 남겨둔 듯한 벤치 하나가 보였다. 커피도 주문하지 않고 그냥 앉았다.
가게 안에서 직원이 눈을 마주쳤지만 그저 미소만 건넸다. 무언의 허락. “앉아도 괜찮아요.”
누군가에게는 잠깐의 자리일 뿐일 이 벤치가 지금의 나에겐 하루의 방향을 돌리는 회전대 같았다.
앉아 있는 동안 머릿속에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 자체로 좋았다.
🪞 풍경 속에서 사라지기
다시 걷기 시작했다. 카페 외벽엔 고양이 두 마리가 드리워진 햇살 위에 몸을 말고 있었고, 마주 오는 자전거는 미동도 없이 지나쳤다.
사람들은 나를 보지 않았고 나도 그들을 기억하지 않았다. 풍경에 스며드는 기분, 내가 어디에 있어도 괜찮다고 느끼는 순간.
벽을 따라 난 균열, 화분 위에 놓인 작은 돌 조각, 그리고 누군가 떨어뜨린 헝겊 한 조각조차 내 하루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 돌아가는 길, 남은 것 없이 가볍게
점점 발걸음은 숙소를 향했고 거리는 여전히 조용했다. 쌀국수의 국물은 속에서 따뜻하게 남아 있었고, 햇빛은 머리 위로 천천히 기울었다.
어떤 생각도 정리되지 않았고, 사진도 찍지 않았고, 사람과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하루를 제대로 살았다고 느꼈다.
📌 치앙마이 골목은 말을 걸지 않는다
치앙마이의 골목은 여행자에게 무엇도 요구하지 않는다. 계획도, 소비도, 성취도 없이 그저 “걸어도 좋다”고 말해줄 뿐이다.
그리고 그런 골목을 해장 후 걷는다는 건 몸과 마음이 동시에 가벼워지는 방식이다.
아무런 목적 없이 내가 지금 여기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한 하루.
그게 오늘의 골목 산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