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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앙마이 님만해민 골목에서

by zipdoctor 2025. 5.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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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앙마이 님만해민 골목에서

치앙마이에 도착한 지 사흘째 되는 날이었다. 더 이상 어딘가를 부지런히 다닐 이유가 없었고, 굳이 어디를 가야 할 필요도 없었다.

아침은 늦게 왔다. 그렇다고 늦잠은 아니었다. 그저, 일찍 일어날 필요가 없는 날. 창문을 열자 나무 냄새가 들어왔고, 머리맡엔 커튼 사이로 햇살이 조심스럽게 스며들고 있었다.

짐은 정리되어 있었고, 방은 조용했고, 나는 오늘 하루가 천천히 지나가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 Ristr8to 카페에서 시작한 하루

숙소를 나와 Ristr8to로 향했다. 이 골목에 머문다면 반드시 들르게 되는 유명한 카페지만, 그 유명세보다 먼저 문을 열고 들어서면 조용한 공기가 먼저 느껴진다.

바리스타가 라떼를 내릴 때, 손이 아주 천천히 움직였다. 주문한 컵을 받아 바깥 자리에 앉았다. 나무 그늘 아래, 작은 아이가 옆을 지나가고, 오토바이 한 대가 부드럽게 코너를 돌았다.

라떼는 진했고, 커피잔은 작았다. 그 작음 덕분에, 나는 그 잔을 아주 천천히 마셨다.

🚶‍♀️ 골목 사이, 이름 없는 길 위에서

카페를 나와 딱히 목적 없이 걸었다. 님만해민 소이 5, 소이 7, 소이 9… 길에는 이름이 있었지만 그날 나에게는 그냥 걷기 좋은 길이었다.

벽돌 벽에 붙은 작은 간판들, 흰색 커튼이 드리워진 카페, 식물이 넘쳐나는 상점 앞을 지나 햇빛이 바닥에 동그랗게 떨어지는 곳을 찾아 걸었다.

어디서든 멈출 수 있었고, 어디서든 앉을 수 있었다. 그게 이 동네의 묘한 여유였다.

가게 안에 들어가지 않아도 좋았다. 그저 가게 앞, 나무 그늘 벤치 하나만으로도 ‘이 하루에 충분히 참여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 책 없이 머무는 카페, GRAPH one nimman

점심은 건너뛰었다. 대신 GRAPH one nimman이라는 작은 카페에 들어갔다.

검정색 벽면과 나무 테이블, 전등은 낮게 드리워졌고 실내에는 아주 낮은 음악만 흘렀다.

콜드브루 한 잔을 시켰다. 조금 산미 있는 커피. 잔을 내려놓고 나는 오래도록 가만히 앉아 있었다.

책도, 휴대폰도 꺼내지 않았다. 사람이 드문 점심시간, 그저 이 공간과 함께 천천히 호흡하는 기분이었다.

🧳 느린 여행자의 오후

골목 끝 One Nimman 쇼핑 아케이드를 둘러봤다. 관광객들이 많이 오는 곳이지만 낮엔 상대적으로 한산하다.

현지 디자이너들의 작은 소품, 손으로 그린 엽서, 그리고 향초 하나를 천천히 골랐다. 내가 이 도시를 기억하는 방식은 사진보다 냄새, 공기, 조용함이었다.

🌇 해 질 무렵, 나무 아래 앉다

숙소로 돌아가기 전, 님만해민의 한적한 골목으로 다시 걸음을 옮겼다. 이름도 없는 커피 트럭 옆 플라스틱 의자에 앉았다.

오렌지빛 하늘이 나뭇잎 사이로 흘렀고, 사람들은 말없이 지나갔다. 길고양이 한 마리가 발밑을 스쳤고, 나는 커피를 다 마셨다.

그렇게 하루가 저물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그 어떤 날보다 가득 찼다고 느꼈다.

📌 치앙마이, 님만해민의 하루

여행은 빠르게 움직이지 않아도 된다. 가끔은 이렇게, 아무 목적 없이 천천히 걷고, 마시고, 바라보는 하루도 괜찮다.

치앙마이의 님만해민 골목은 그런 하루를 받아줄 준비가 언제나 되어 있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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