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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하루, 방콕 어딘가에서 나만 걷는 속도로

by zipdoctor 2025. 5.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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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하루, 방콕 어딘가에서 나만 걷는 속도로

아침부터 햇살이 조용했다. 방 안엔 바람도 없었고, 커튼 틈 사이로 들어온 빛이 유리컵을 통과해 벽에 희미한 흔적을 남겼다.

늦잠이었지만 일찍 일어난 기분. 방콕의 소음은 이른 아침부터 거리를 채우고 있었지만 온눗역 근처, 이 호텔 방 안은 그리 시끄럽지 않았다.

창문을 반쯤 열고 아래를 내려다봤다. 오토바이, 노점, 아이, 현지인들, 그리고 나는 그 틈에 있지 않은 사람이었다.

오늘은 어딘가를 가야 한다는 조급함이 없었다. 계획도 없고, 약속도 없고, 그저 마음이 끌리는 쪽으로만 걷고 싶었다.

🌿 아침을 건너는 시간

슬리퍼를 신고 호텔 로비를 지나 온눗역 3번 출구 쪽 골목으로 들어섰다. 과일 파는 아줌마가 있었고, 그 옆에선 바나나 튀김을 튀기고 있었다.

포장지에 손이 닿자 따뜻했다. 튀김 하나를 입에 넣고 걷는 골목마다 조금씩 아침이 깨어나고 있었다.

프라카농 시장은 아직 정리되지 않은 채로 사람들이 무심하게 오가고 있었다. 어디선가 국물 끓는 냄새가 났고, 젖은 바닥을 밟을 때마다 신발 바닥이 미끄러졌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그게 참, 편했다.

☕ 골목 끝의 카페, 그리고 멈춤

구글맵을 보지 않고, 그냥 발이 가는 쪽으로 걷다 YAMA Café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문을 열자, 조용한 선풍기 소리. 혼자 앉아 있는 사람이 몇 명 있었다.

아이스 라떼를 시켰고, 목재 테이블에 앉았다. 테이블 위에는 그날의 빛이 눕고 있었고 나는 가만히 앉아 그것을 바라보았다.

책도, 핸드폰도 꺼내지 않았다. 눈앞에서 얼음이 천천히 녹았고, 에어컨은 없었지만 공기는 부드러웠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 그게 오늘의 계획이었는지도 몰랐다.

🚶 이동, 아무 의미 없는 산책

호텔에 들르지 않고 BTS를 타고 Ari 역에 내렸다. 출구를 나서자 방콕 같지 않은 거리였다.

나무가 늘어선 좁은 골목, 조용한 카페, 쓰레기 수거차 소리. 모두 아주 느리게 흘렀다.

Landhaus Bakery라는 카페에 들어갔다. 창가엔 햇빛이 가득했고 그 틈으로 빵 굽는 냄새가 흘러나왔다.

카푸치노 한 잔을 시켜 모서리 테이블에 앉았다. 혼자 있는 시간이 어색하지 않았다. 이 도시가 그렇게 만들어줬다.

🌳 짜뚜짝 공원, 흔적 없는 시간

오후엔 별 생각 없이 Chatuchak Park으로 갔다. 나무 아래 벤치에 앉았고, 주변은 거의 현지인들이었다.

물 위에 떠 있는 연꽃, 노란 티셔츠를 입은 조깅하는 남자, 엄마 손을 잡고 걷는 아이. 그 사이에 나는 아주 작게 앉아 있었다.

이어폰을 꺼냈다가 다시 넣었다. 소리가 필요하지 않았다.

🌇 공항으로 향하는 오후

BTS를 타고 공항철도로 갈아탈 때쯤, 해가 기울었다. 창밖을 보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사진도 안 찍었고, 선물도 안 샀고, 이름 있는 관광지도 안 갔다.

그런데 이상하게 오늘 하루는 내가 오랫동안 기억하게 될 것 같은 날이었다.

📌 조용한 방콕, 그 하루

방콕은 시끄러운 도시지만 그 안엔 조용한 틈 하나쯤은 꼭 있다.

그리고 나는, 그 틈에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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