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중 가장 좋은 한 끼는 늘 ‘혼자서 먹는 늦은 점심’이었다. 그리고 그 곁에 술 한잔이 있다면 그건 그날 하루를 위한 가장 조용한 예고편이 되곤 한다.
치앙마이, 님만해민. 이번엔 아침 카페 대신 낮술로 하루를 시작해 보기로 했다.
🍷 11:30AM – *Rustic & Blue*, 늦은 아침과 와인 한잔
산뜻한 공기에 어울리는 골목을 따라 Rustic & Blue - The Farm Shop으로 향했다. 님만해민 소이 7 골목 안, 반쯤 열린 목재문과 테라코타색 벽, 그곳에서 브런치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 건 “Chilled wine available all day”라는 손글씨 메뉴였다.
오픈 에어 자리에 앉아 스파클링 와인 한 잔과 시금치 치즈 토스트를 주문했다. 태국의 햇살 아래 가볍게 올라오는 탄산과 치즈의 짠맛이 묘하게 잘 어울렸다.
혼자 먹는 와인 브런치. 주변 테이블은 대부분 조용했고 누구도 나를 신경 쓰지 않았다.
🍻 2:00PM – *Beer Lab*, 낮의 맥주라는 선택
와인의 기분이 가라앉을 즈음 슬슬 님만해민 대로를 따라 Beer Lab 쪽으로 걸었다. 익숙한 이름. 하지만 이번엔 처음, 한낮에 이곳을 찾았다.
사람이 적은 대낮의 Beer Lab은 마치 다른 장소처럼 느껴졌다. 시끄러운 음악 대신 잔잔한 재즈가 흘렀고 메뉴를 천천히 넘기다 싱하 생맥주 한 잔을 시켰다.
유리잔엔 미세한 물방울이 맺혀 있었고, 그걸 입에 댄 순간 천천히 하루가 느슨해지기 시작했다.
맥주와 함께 시킨 감자튀김도 따로 나눠 먹을 사람 없이 천천히 내 속도로 줄어들었다.
🌇 5:30PM – *The Beer Republic*, 하루를 마무리할 자리
해가 기울 무렵, 조금 더 북쪽 골목 안 The Beer Republic으로 향했다. 살짝 클래식한 분위기와 선택지가 많은 수제맥주 탭이 이곳의 분위기를 잘 설명해준다.
내가 고른 건 เชียงใหม่ Pale Ale. 이 도시 이름이 들어간 맥주를 이 도시에서 마시는 건 어쩐지 기분이 묘했다.
1층 야외석에 앉아 잔을 반쯤 비운 뒤 혼자 있다는 사실이 조금도 불편하지 않다는 걸 느꼈다.
🌙 조용한 밤이 오는 속도
술을 마셨지만, 취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조용해졌고, 생각은 단순해졌고, 길 위의 소리가 더 잘 들렸다.
길가에 앉아 가방을 옆에 두고 지나가는 오토바이와 골목을 기웃거리는 고양이를 바라봤다.
와인, 맥주, 그리고 다시 맥주. 종류는 달랐지만 이 하루가 나를 천천히 눌러앉히는 감각은 같았다.
📌 혼자 마시는 술 한잔이 여행을 완성하는 방식
치앙마이의 님만해민에서 낮술로 시작한 하루는 결국 그날 하루를 아무 말도 없이 안아주는 방식이었다.
누군가와 나누지 않아도 충분히 괜찮았고, 술기운 없이도 충분히 부드러웠다.
그래서 나는 혼자 마신 그 술 한잔들을 이 도시에서 받은 다정한 인사처럼 기억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