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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해 처음 떠난 조용한 여행, 후아힌에서 배운 느린 하루

by zipdoctor 2025. 5.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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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해 처음 떠난 조용한 여행, 후아힌에서 배운 느린 하루

그때 나는, 무언가를 시작하기 전에도, 끝내기 전에도 아니었다.

그냥 잠깐, 어디든 가고 싶었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하루쯤은 말없이 걷고 싶었다.

그렇게 고른 곳이 태국 후아힌이었다. 추천 받은 것도, 철저히 계획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방콕보다 조금 조용하다기에, 그리고 바다가 있다기에.

🚙 공기부터 다르던 도시

방콕에서 차로 세 시간 반. 창문을 반쯤 열었더니 바람이 달랐다. 어디선가 망고 냄새 같은 게 났고, 차창 밖 풍경은 점점 ‘도시’에서 ‘시간’이 느려지는 모양이었다.

숙소는 작았다. 풀장 하나와 나무 두 그루. 복잡한 조명이 없어서, 밤이 되자 어둡고 고요했다.

그날 밤, 오랜만에 휴대폰을 침대에 놓고 잤다. 무언가를 놓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없이.

🌤 아침, 바다를 걷다

후아힌 바다는 말이 없다. 파도가 아주 살짝만, 발등에 닿았다 사라진다. 수영복보다 티셔츠를 입은 사람이 더 많고, 선글라스를 쓴 사람들보다 눈을 감고 앉아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도 해변 모래 위에 그냥 앉아 있었다. 바람 소리가 조용하게 속삭이는 듯해서, 책 한 권 꺼내놓고 결국 읽지 않았다.

해변 근처 작은 카페에 들어가 에어컨 없이 열린 문으로 바람을 맞으며 진한 커피 한 잔을 마셨다. 거기선 아무도 나를 보지 않았다. 그게 그렇게 편할 줄은 몰랐다.

🍛 아주 소박한 점심, 기억에 남는 식사

호텔 근처 작은 식당에서 파파야 샐러드랑 똠얌꿍을 시켰다. 주인 아주머니는 웃지도 않았지만, 물티슈를 건네줄 때 손이 따뜻했다.

옆자리엔 혼자 온 서양 여성이 앉아 있었는데, 그녀도 말없이 밥을 먹었다. 우린 서로 말을 안 했지만 뭔가를 나눈 기분이었다. 그 순간, “나만 혼자가 아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 조용한 저녁, 아무 계획 없는 밤

그날 저녁은 야시장도 안 갔다. 쇼핑도 안 했고, 마사지도 안 받았다. 그냥 숙소 옥상에 올라가 앉아 있었다. 달이 밝았고, 내 마음도 이상하게 덜 복잡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 괜찮다’는 이 느낌. 이게 바로 ‘쉼’이구나.

📌 후아힌은 그런 곳이었다

누가 묻는다면 말하진 않을 거다. “태국 어땠어?” 하면 그냥 “괜찮았어” 하고 웃을 거다.

하지만 사실 후아힌은 내가 처음으로 ‘나를 위한 시간’을 선물해준 도시였다.

그 조용한 바다, 그 아무 말 없는 식사, 그리고 그 느릿한 밤바람.

후아힌은 그때, 나를 아주 천천히 다시 괜찮아지게 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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